마태오 17장 1-9절;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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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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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이시자 온전한 하느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복음서는 이런 예수님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그 가운데 수난과 죽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잘 드러내는 반면,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거룩한 변모는 부활하신 뒤에 드러날 신성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거룩한 변모 사건은 구약 성경의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는 요소와 성경의 상징적인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높은 산’이나 영광스럽게 변모한 모습은 이집트 탈출과 광야의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초막에 관한 내용도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엘리야는 바알의 사제들과 하였던 내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낸 예언자로 복음서에 자주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변모를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복음서는 그 영광을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베드로 사도의 반응이 그 영광을 잘 표현하는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변모는 하느님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구원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수난은 값지고 수난을 통하여 드러나는 사랑은 위대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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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우리가 추구하는 영광은 무엇인지,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영광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베드로는 너무 기뻐서 본인이 무슨말을 하는줄도 모르며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베드로와 같이 주님과 함께 함이 기쁨인 삶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그런 기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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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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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오랫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배고픔을 심하게 느끼시자, 달콤한 유혹이 들어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유혹은 늘 당사자의 입장을 합리화시켜 줍니다. “그러다 건강을 해친다면 어떻게 큰일을 하겠습니까? 일단 먹고 기운을 내야 합니다. 그러니 이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십시오.” 물론 먹어야 살지만 그렇다고 돌로 만든 빵을 먹을 수 있습니까? 부정직하게 번 돈으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또다시 유혹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에게 자신을 과시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경향이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 유혹입니다. 땅에 엎드려 악마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이지요. 이는 ‘내가 찾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주님께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내가 주님 뜻에 맞추려 하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내 뜻에 따라 주어야 만족하는지?’ 이 점을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신앙생활의 불편함, 나아가 하느님에 대한 서운함과 같은 부정적 요소를 떨쳐 버리고 신앙생활의 장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늘 떠올려야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